효령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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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李樑) [1519(중종14)~1582(선조15)]

자는 공거(公擧), 대군의 5대손이며 현령 전성군 대(대)의 아들이다. 명종대왕비인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의 외숙으로 정사룡(鄭士龍)의 문인이다. 1552년(명종7) 식년 갑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注書)가 되고 1555년(명종10) 정사룡의 추천으로 호당(湖當)에 들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558년(중종13) 병조정랑이 되고 이어서 사간원 헌납(獻納)·홍문관 수찬(修撰)·교리·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다음 해 홍문관으로 다시 옮겨 부응교(副應敎)·응교를 지내고 척신(戚臣) 윤원형(尹元衡)의 횡포를 견제하려는 명종대왕에게 중용되어 승정원 부승지를 거쳐 홍문관 부제학으로 승진되었다. 1560년(명종15) 사간원 대사간이 되고 병조참지·예조참판·동지중추부사·이조참판·동지성균관사에 올랐다. 그는 명종대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이감(李戡)·신사헌(愼思獻)·권신(權信)·윤백원(尹百源) 등과 결탁하여 세력을 기르고 정치를 농단(壟斷)하였다. 명종대왕도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평안도관찰사로 내보냈다. 1562년(명종17) 다시 공조참판 겸 홍문관 제학에 중용되고 이조참판에 제수되었다. 이어 예조판서·의정부 우참찬·공조판서를 역임하고 이조판서가 되었다. 1563년(명종18) 몇몇 무리들과 모의하여 박소립(朴素立)·기대승(奇大升)·허엽(許曄)·윤두수(尹斗壽)·이산해(李山海) 등 사림을 제거하려다가 조카 기대항(奇大恒) 등에 의해 탄핵을 받고 무리가 함께 관직이 삭탈되고 평안도 강계로 귀양가서 적소에서 별세하였다. 별세후 신원이 되면서 관직이 회복되고 좌찬성에 증직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구 원당동 왕릉골에 있다. 신도비문은 정사룡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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