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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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李拭) [1522(중종17)~1587(선조20)]

자는 청지(淸之), 호는 손암(損菴), 대군의 5대손이며 장양도정의 손자이고 증 이조참판 행죽산부사 승상(承常)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 정부인 한양조씨로 증 승지 수곤(壽昆)의 딸과 정부인 창녕조씨로 증 부제학 언박(彦博)의 딸이다. 1546년(명종1) 둘째 형 증(拯), 셋째 형 양(揚)과 함께 생·진시에 급제하고 선략장군(宣略將軍) 때인 1553년(명종8) 별시 문과·병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檢閱)이 되었다. 이후 승정원 주서·홍문관 저작(著作)·경연청 설경(說經)을 역임하고 1559년(명종14) 참상(參上)으로 승계되어 사간원 정언이 되었다. 1560년 (명종15)에는 홍문관 수찬·병조좌랑·이조좌랑을 거쳐, 다음 해 병조정랑이 되고 이어 시강원 문학(文學)과 이조정랑이 되었다. 1563년 (명종18) 의정부 검상(檢詳)에 이어 사헌부 집의(執義)가 되었다가 다음 해 사간원 사간과 홍문관 응교를 지낸 다음 가자되어 1565년(명종20) 당상(堂上)인 홍문관 직제학에 올랐다. 다음 해 동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병조참의를 역임하고 강원도 관찰사에 기용되었다. 1569년(선조2) 내직인 우승지와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72년(선조5)에는 외직인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574년(선조7) 대사간에 이어 1585년(선조18)까지 부제학 2회, 대사간과 대사헌을 9회 역임하였고, 1586년(선조19) 이조참판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나 종2품관에게 주는 군직 행 호군(護軍)에 있다가 66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도촌동, 구 광주군 돌마면 뒷산 해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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