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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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록(李慶祿) [1533(중종28)~1599(선조32)]

자는 백수(伯綬), 대군의 6대손으로 오위장 간(幹)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건강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겨 무과에 나가 연속 2번 장원하고 선전관으로 선발되었다. 이어서 단성현감·호조좌랑·하동현감·고성현령을 역임하고 치적을 쌓아 경흥부사로 발탁되었다. 1587년(선조20) 경흥부사 재임시 여진족의 녹둔도(鹿屯島) 기습 내침으로 우리 군사 11명이 살해되고 군민 160여명이 나포당했으며 말 15필을 약탈당하자 방어 책임을 맡고 있던 조산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1588년(선조21) 7월 14일 제1차 정벌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피납된 160여명의 구출과 소수의 적을 살해했을 뿐 우리측 피해는 엄청나게 커서 백의종군으로 입공자속(立功自贖)하라는 문책을 받았다. 4개월 뒤 대대적인 2차 정벌에서 여진부락 200여 호를 불태우고 적 380여 명을 죽였으며 말 9필과 소20여 두를 노획하였다. 이때 백의종군을 풀고 나주 목사로 재기용하는 교지가 내려졌다. 그러나 나주는 대읍이라 문관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대간의 주장이 있어 김해부사가 되었다. 1592년(선조25) 김해부사의 임기를 끝내고 도총부 경력(經歷)으로 잠시 있다가 나주목사가 되었으며 선정을 베푼 공을 인정받아 선조대왕으로부터 표리(表裏) 1습을 하사받았다 임진왜란 때 용인전투에서 전라 관찰사 이광(李洸)이 이끄는 관군의 중위장으로, 또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을 도와 큰 공을 세우고 이 해 겨울에 통정대부에 올라 제주목사로 승진하였다. 1593년(선조26) 제주목사 재임 중 초병 300명을 뽑아 바다를 건너 선조대왕을 호위하겠다는 장계(狀啓)를 올리고 이어 지방산물을 해로를 통하여 의주행재소로 보냈다. 1598년(선조31) 봄에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분상(奔喪)하여 바다를 건너는 도중 다시 임지로 부임하라는 명을 받고 임지로 돌아가 낮에는 관복으로 정사를 보고 밤에는 상복으로 집상(執喪)하였다. 1599년(선조32) 여름 제주목사 7년이란 최장기 재임기록을 남기고 임지에서 순직했다 조정으로부터 순충적덕명의보조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완녕부원군에 증봉 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선영하에 있다. 장유(張維)가 쓴 신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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