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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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윤(李大胤) [1530(중종25)~1596(선조29)]

자는 경술(景述), 호는 금헌(琴軒) 또는 만휴당(晩休堂), 대군의 5대손이며 춘성정 담손(聃孫)의 손자이고 증 통정대부 혼(渾)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 숙부인 풍산심씨로 증 참의 언통(彦通)의 딸이다. 배위는 증 정부인 밀양박씨로 부사 응종(應宗)의 딸이다. 1558년(명종13)에 진사가 되고 1585년(선조18) 식년 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까지 지내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 향리에서 도를 즐기며 후진계도에 힘썼다. 1592년(선조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의 격문을 내고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품관(品官)과 교생(校生)들로 오장(伍長)을 삼고, 팔결연호(八結煙戶)로 군졸을 삼아 남원성의 수비에 대비하였으며 수문장은 생원과 진사로 삼았다. 이어 담양의 회합에서 고경명(高敬命)을 대장으로, 자신을 위병소 도유사(都有司) 겸 모량장(募糧將)에 추대하여, 대장간 10여 소를 마련하여 병기를 만들었다. 또 군마와 군량을 모아 아들 엽(曄)에게 각 진영에 조달케 하였다. 순찰사 김성일(金誠一)이 “3남(三南)중에서 군량 보급은 호남이 제일 잘하였다”고 모량장 대윤에게 포상을 건의하여 통정대부 의흥위(義興衛) 상호군(上護軍)에 특제(特除)되었다. 그러나 의병을 모았다고 상을 받는 것은 선파(璿派)의 누가 된다고 상소를 올려 사양하자 선조대왕은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자손에게 벼슬을 내리라는 교지를 내렸다. 그 후 선산(善山) 진중에서 병을 얻어 순직하였다. 예조참판에 증직되고 월곡서원(月谷書院)에 배향(配享)됐다. 묘소는 전북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무산 간좌에 있다. 봉조하 이돈우가 지은 묘지에 참판 조석원이 쓰고 이기헌이 전자한 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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