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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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李渾) [1543(중종38)~1592(선조25)]

대군의 5대손이며 낙안군의 손자 금양부정의 둘째 아들 증 호조참판 원례(元禮)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증 정부인 평양조씨로 증 참판 기(機)의 딸이고, 배위는 정부인 장수황씨이다. 1567년(명종22) 무과에 급제한 후 1588년(선조21) 단천(端川) 군수를 비롯한 내외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경원(慶源) 부사 재직중인 1589년(선조22) 1월 무신(武臣)들을 순서에 의하지 않고 승자시켜 수·병사에 기용하는 특예가 시행될 때 유홍(兪泓:좌찬성때)의 추천을 받았다. 그 후 부령부사,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및 제주목사를 차례로 역임한 다음 함경도 남병사에 부임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난 5월 휘하 장병을 이끌고 양주에 이르러 부원수(副元帥) 신각(申恪)의 병력과 합세, 양주의 해령(蟹嶺:속칭 게너머 고개)에서 왜적을 요격하여 적 70여급을 참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1592년(선조25) 6월 12일 관북방면으로 진격중인 왜장 가도(加藤) 및 모리(毛利)의 공격에 밀려 방어하던 철영(鐵嶺)을 버리고 갑산(甲山)으로 퇴각하다가 기춘연(奇春年), 박문연(朴延文) 등 부적난민(附敵亂民)들의 기습을 받고 싸우다가 아들과 함께 전사하여 후사가 끊겼다. 1900년(광무4) 특명으로 장양도정 주(?) 손자 현감 양(楊)의 9대손 회덕(會悳)에게 봉사케 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율석리 선산 자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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