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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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李?) [1579(선조12)~1667(현종8)]

자는 형원(炯源), 호는 교촌(郊村). 대군의 7대손이며 송산도정의 현손으로 증 호참 사제(思齊)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 정부인 청주한씨로 사과 용(鏞)의 딸이다. 배위는 증 정부인 은진임씨로 현감 경우(景佑)의 딸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618년(광해군10) 인목대비가 폐위되어 서궁에 유폐되었을 때 위험을 무릎쓰고 밤을 틈타 식량을 공급하였고, 연흥부부인(延興府夫人) 노씨(盧氏)가 안치될 때와 반정 후 돌아올 때 수행하였다. 1627년(인조5) 9월 홍경원 천장(遷葬) 때에는 배설관에 봉무한 공으로 참봉이 되었고, 1633년(인조11)에는 아마 한 필을 하사받았고 1634년 7월 직장으로 올랐다. 1636년(인조14) 동부 주부를 거쳐 1637년(인조15)에는 금천도 찰방에 나갔다가 1641년(인조19) 포천현감을 역임하였다. 1644년(인조22) 금성현령이 되었으며 거사(去仕) 때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가 세워졌다. 1659년(효종10)에는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가자되었다. 1629년(인조7)에는 별좌로서 소무원종공신(昭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으며 1667년(현종8)에는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증직되었다. 묘소는 광주군 돌마면 분당동 주인동산 간좌(현 성남시 분당동) 였으나 도시계획으로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만곡 간좌에 이장되었다. 묘비·상석·망주석·충효적문비가 있으며 금성(金城)에 선정거사비(善政去思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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