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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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李曙) [1580(선조13)~1637(인조15)]

자는 인숙(寅叔), 호는 월봉(月峰), 시호는 충정(忠定). 대군의 7대손이며 제주목사 증 영의정 완녕부원군 경록(慶祿)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36)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시작으로 남포·장연현감을 거쳐 곡산·진도군수를 지내고 1622년(광해군14) 장단부사 겸 경기방어사로 있으면서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어 완풍부원군(完豊府院君)에 봉해지고 호조판서에 보직되었다. 1624년(인조2) 경기도 관찰사·총융사(摠戎使), 다음 해 훈련도감에 재직하면서 해이한 군기를 확립하고 군량미를 비축하며 둔전을 설치했다. 1626년(인조4) 수어사(守禦使)로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성 안에 무기와 군량미를 비축했다. 1628년(인조6) 병조판서에 오르고 이어서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형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636년(인조14) 병자호란에는 어영대장으로 북문을 지켰으며 이듬해 정월 쇠약한 몸을 이끌고 적을 막다가 진중에서 순직하였다. 향년 57세였다. 죽음에 임하여 그 사위 채유후(蔡有後)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한하는 바가 없으나 오직 능히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은 회계(會稽)의 수치이다.”라 하였다. 산수(算數)에 능했고 독서를 즐겨 장서가 많았으며 효성이 지극했다. 저서로는 <마경언해(馬經諺解)>를 남겼고 글씨도 명필에 들었다. 남한산성의 온조왕(溫祚王) 사당(현 崇烈殿)에 배향되고, 인조묘정(仁祖廟庭)에 배행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송산에 있다. 신도비는 오도일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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