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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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李灤) [1582(선조15)~1628(인조6)]

자는 자하(子河), 대군의 7대손으로 여양군의 현손이며 창녕현감 증 호조참판 규빈(奎賓)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 정부인 선산임씨로 장령 혼(渾)의 딸이다. 배위는 정부인 고령신씨로 현감 탁(濯)의 딸이며, 고령부원군 신숙주의 후손이다 . 1614년(광해군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비변랑·총부도사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함평현에 부임하여 목민관으로서의 치적이 인정되어 통정대부으로 가자되어 전라우수사에 제수되었다. 1627년(인조5) 정묘호란 때에는 어영중군으로 인조대왕을 강화도에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이어 가의대부에 승자되면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발탁되었고, 1628년(인조6) 1월 춘신사(春信使)로 심양(瀋陽)에 갔다가 통역관 박경용(朴景龍)의 부당한 통역으로 투옥되어 옥중에서 별세하였다. 1639년(인조17) 관작이 추복(追復)되고 직첩을 추급(追給)받았다. 묘소는 전남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죽곡 후록 신좌이다. 영의정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이 비병을 짓고 영의정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이 쓴 묘비가 있다. 공의 묘비는 금석문이며 호란기 정치사 연구의 주요 사료 가운데 하나이다. 찬자(撰), 전서(篆), 서자(書)가 당대 최고위 인물에 의한 최고 수준의 금석문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9.3.20 전라남도 문화재자료(제 273호)로 지정되었다. 도비와 군비를 들여 비각을 건립하고, 진입로를 축조했으며, 단청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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