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행사 일정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중호(李仲虎) [1512(중종7)~1554(명종9)]

자는 풍후(風后), 호는 이소재(履素齋), 시호는 문경(文敬). 대군의 현손이며 정의대부 고안군 정(精)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 여의정 성산부원군 문경공 직(稷)의 손녀이다. 배위는 증 정부인 청주한씨로 이조정랑 세공의 딸이다. 서봉(西峰) 류우(柳藕)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김안국(金安國)의 절찬을 받았으며 기묘사화가 있은 후에 <소학(小學)>을 강론하였는데 이를 본 서경덕이 칭찬하기를 “나로서는 가히 미치지 못하겠다.” 하였으며, 퇴계 이황도 “공의 도학이 너무나 정미(精微)해서 경솔히 의론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1545년(인종1) 국상이 나자 문도를 이끌고 궐 문 밖에서 망곡(望哭)을 하고 돌아와 나오지 아니하여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더불어 법도를 함께 하였으며, 동몽훈도(童蒙訓導)를 거쳐 1554년(명종9) 사과(司果)가 되었다. 벼슬보다는 학문 연구와 강학에 더욱 힘썼다. 유고 <심성정도(心性情圖)>에서 심(心)·이(理)·도(道) 등의 관계를 ‘성(性)은 심의 이이고, 심은 성의 영(靈)이며, 기(氣)는 이의 구(具)이고, 인(人)은 천(天)의 심(心)이다’ 라고 설명하였고, ‘도(道)는 이의 간(幹)이고, 이는 도의 조(條)’라고 하였다. 명종과 선조조에 걸쳐 배출된 문하에 리성중(李誠中)·윤두수(尹斗壽)·리양원(李陽元)·리홍주(李弘?)·정지연(鄭芝衍)·서기(徐起)·김근공(金勤恭)·박응남(朴應男)·박응복(朴應福) 등 400여 명에 이르고 평생을 구용(九容)·구사(九思) 및 경(敬)·의(義)로써 몸과 마음가짐의 규칙을 삼았다. 44세에 별세하였으며 사후 366년 되는 1910년(순종4) 정통 유현 도학자로 절행이 뛰어난 유학종사로 추앙되어 내부대신(內部大臣)에 추증되고 ‘문경’이란 시호를 받았다. 유저로는 <심성정도(心性精圖)>·<성리명감(性理明鑑)>·<자경시문(自警詩文)> 20여 권 및 <이소재집(履素齋集)>과 사단법인 청권사가 편찬한 <국역 이소재실기>가 있다. 묘소는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효자봉 해좌이다. 문인 김근공과 정지연이 지은 묘갈명이 있다.

게시글이 어떠셨나요?



다른 이모티콘을 한번 더 클릭하시면 수정됩니다.

화살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