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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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祥) [1560(명종15)~1637(인조16)]

자는 자정(子禎), 호는 팔경정(八景亭), 대군의 9대손이며 중추부사 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숙부인 김해김씨로 주부 언(彦)의 딸이다. 배위는 정부인 창녕조씨로 구연(龜淵)의 딸과 정부인 광주이씨 훈첨정 증 호참 광복(光復)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숙부 석담(石潭)에게서 수업하고 1587년(선조20) 무과에 급제, 선전관·사복시·주부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을 당하여 유도대장(留都大將) 이양원(李陽元)의 휘하에 예속되어 싸우다 한강방어의 실패로 양주로 철수, 분군되어 이혼(李渾)의 부대와 합세하여 해유령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 뒤 훈련원정이 되고 이어서 경상좌도 병마우후로 제수되었으나 노환의 부모를 잠시 받드느라 부임하지 못하였다. 1594년(선조27) 대구 도호부사에 제수되어 전란 중 많은 공적을 남겼다. 1596년(선조29) 7월 황신(黃愼)이 일본에 사신으로 갈 때 조사관으로 수행하였으며, 다음 해 이항복(李恒福)이 진주사(陳奏使)로 명나라에 갈 때 수행하기도 하였다. 1617년(광해군9) 상호군으로 있을 때 이원엽(李元燁)·정지산(鄭之産)과 함께 이기춘(李起春)을 채포하여 큰 공을 세우고 그 뒤 돈녕부도정이 되었다. 선묘조(宣廟朝)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으로 책록되고, 광해군 때 폐모론을 끝내 반대하고 고향에 돌아가 생을 마쳤다. 묘소는 경남 창원군 진동면 동정리(현 마산시 합포구 진동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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