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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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李省) [1562(명종17)~1624(인조2)]

자는 자성(子省), 초휘는 성(惺). 대군의 6대손이며 강성도정(江城都正)의 증손으로 사헌부감찰 경금(景?)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숙인 안동권씨로 소(紹)의 딸이다. 배위는 평양조씨 도승지 인후(仁后)의 딸이다. 숙부 경두(景山斗)에게 출계되었다. 1596년(선조29)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성균관 학록으로 처음 벼슬에 오르고 이어 함경북도 평사가 되었다. 1599년(선조32) 전적이 되고 이듬해 이조좌랑·사간원 정언등을 거쳐 1604년(선조37) 함경도 도사에 이어 북청 판관이 되었다. 1606년(선조39) 충청도 도사, 이듬해 경상도 도사를 지낸 뒤 1608년(선조41)에는 헌납·지평·부교리를 역임하고 이듬해 세자시강원 보덕·장령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1610년(광해군2) 사간이 된 뒤 집의·전한·응교 등을 거쳐, 1612년(광해군4)에는 대사성·대사간을 역임한 뒤 이듬해에는 부제학에 올랐다. 이산해(李山海)·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과 함께 대북파의 당여(黨與)로서 선조말에 광해군을 대신하여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려 했던 소북파의 영수 류영경(柳永慶)의 옥사에 깊이 관여하여 1613년(광해군5) 정운공신(定運功臣) 3등에 책록되고 완계군(完溪君)에 봉군됐다. 이어서 1614년(광해군6) 대사헌을 거쳐 이듬해 이조참판이 되어 수선도감제조(修繕都監提調)를 겸했으며, 김제남(金悌南)의 역모사건을 추국(推鞫)한 공으로 숙마(熟馬) 1필을 하사받았으며, 이괄의 난 때 별세하였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충주 법왕리 기동 유좌이다. 한남군(漢南君) 이덕형(李德馨)이 지은 행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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